본문 바로가기
한국 교회 명사 설교

이어령 교수, 청년들 마지막 7가지 인생질문에 답하다

by 일본 재일 한인교계 연도별 보도 2023. 1. 24.
반응형

“‘지성’은 필요악… ‘영성’으로 가는 디딤돌”

▲인터뷰하는 이어령 교수. 그는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없다”며 “생명은 아름다운 것이고, 기적이다. 오늘 하루를 살았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라고 질문했다. ⓒ베리타스포럼

 

지난 2월 영면한 故 이어령 교수가 청년들의 질문에 답했던 생전 인터뷰가 공개됐다. 9월 27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과학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2022 베리타스포럼 고려대’에서다.

 

베리타스포럼 고려대 측은 코로나19가 한창일 당시 故 이어령 교수와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촬영했으나, 온라인을 통해 공개하지 말아줄 것을 당부한 이어령 교수 측의 요청에 따라 이날 오프라인 참석자들에게만 공개했다.

 

반응형

 

‘이어령, 청년에 답하다: 마지막 7가지 인생질문’을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는 이어령 교수가 청년들이 영상으로 보낸 7가지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마지막 인생질문’이라고 했지만, 진짜 ‘마지막’은 아니다. 이어령 교수는 죽음과 마침내 만나기까지, 육신을 깎아가며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계속 거쳤기 때문이다. 이날 공개된 인터뷰보다 훨씬 야윈 모습으로 응축된 지혜를 전수하는 영상들이 온라인상에 적지 않다.

 

해당 질문들은 베리타스포럼 고려대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것이다. 청년들은 ①디지털을 주체적으로 활용하는 법 ②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 ③지성 발전과 영적 성장의 관계 ④예수님을 만나면 가장 묻고 싶은 질문, 인간이 신의 뜻을 이해할 가능성 ⑤평범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 ⑥평생 깨달은 사랑의 본질 ⑦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법 등을 물었다. ④번 질문이 2개여서, 실제로는 8가지 질문에 답한 셈.

 

미공개 인터뷰가 ‘최초로, 유일하게’ 공개되는 자리답게, 이날 강당에는 이례적으로 400여 명이 참석해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자리가 부족해 중간에 들어온 사람들은 통로 계단에 걸터앉기도 했다. “이어령 교수님을 좋아한다”며 참석한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도 보였다. 이 교수와의 인터뷰 영상 상영 후에는 김학철 교수(연세대)와 배지완 교수(고려대)가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어령 교수는 ‘이야기꾼’답게 위트를 섞어가며 청년들에게 지혜와 통찰을 아낌없이, 신나게 나눠줬다. 딸 故 이민아 목사를 통해 그에게 찾아온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답변했다. 그러면서도 ‘무엇 때문에 믿는 신앙’을 경계하는 한편, ‘지성’과 ‘영성’은 둘로 나눌 수 없는 존재라는 주장도 펼쳤다.

 

답변에 앞서서도 “오늘 대담에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저는 평생 글을 쓸 때 남을 가르치거나 설득하지 않았다”며 “말투는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내 코가 석자인데 누굴 보고 충고하고 이래라저래라 하고 교회가 어떻고 믿음이 어떻고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저는 참회하고 고백하며 안에서 싸우는 혈투를 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지만 특히 밤이 되면 투쟁을 겪는다. 저 자신을 위로하기도 바쁘다”며 “(대담을) 기대하지 마시고, 제 이야기에 설마? 진짜야? 그래? 하면서 회의를 갖고 들으시면, 마음 편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운을 뗐다.

 

故 이어령 교수가 영상 촬영 후 공개하지 말아줄 것을 당부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인터뷰 내용은 평소 그가 인터뷰와 강연 등에서 풀어준 이야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비교적 건강하던 때 촬영됐기에, 기독 청년들에 대한 그의 애정 어린 조언이 더 많은 이들에게 가닿아 오래 오래 기억되고 회자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다음은 그 7가지 질문에 대한 요약과 복기.

 

▲이어령 교수는 “제 이야기를 회의를 갖고 들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베리타스포럼

1. 어떻게 하면 대중적 쏠림 현상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디지털을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요?

첫 질문에 대해, 이어령 교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문명 발달과 미디어 홍수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아졌지만, SNS 등을 통한 여론이나 소위 선동적 가짜뉴스에 쉽게 휘둘리며 오히려 주체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

 

인터뷰 당시 2030이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그들에 대한 공략법을 고민하고 있지만, 이는 어리석은 소리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2030은 우리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생각이나 느낌을 증폭시키고 우리가 몰랐던 것을 젊은이의 감수성으로 바라보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우리를 발견하는 것이지, 우리와 다른 2030을 보는 것은 아니다.

 

이 질문에 예전에 했던 대답은, “검색(檢索)하지 말고 사색(思索)하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궁금한 내용을 클릭 몇 번으로 쉽게 알려 들지 말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답을 찾아내라는 것.

 

그런데, 이 말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2030이 ‘검색’을 하는 것은, 이미 사색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 사색했지만 여전히 궁금하고, 모르겠고,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어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찾아본 것이었다.

 

‘쏠림 현상’에 대해,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계몽주의’를 겪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도 지적했다. 17-18세기 서구에서 과학과 함께 일어났던 이성과 지성이라는 터널을 지나지 않고 그대로 개화기에 들어와, 우리는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

 

지성과 회의(懷疑)는 영성과 믿음의 반대말이 아니라, 이것들이 생기게 하는 필요악이자 디딤돌이라고도 했다. 대단하게 여겼던 것들이 무너지는 것은, 지성이 창조적 의미를 가졌을 때이다. ‘창조적 지성’이란 유일한 것이다. 창조는 지성과 회의를 통해 분석하고 차이를 나타내며, 있었던 것과 없었던 것을 새롭게 이해하게 한다.

 

이어령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 활용에 있어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남들이 안 하는 방법’을 쓴다고 했다. ‘나는 지혜를 사랑하는지, 육체를 사랑하는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육체는 소비하지만, 지혜는 창조하기 때문. “창조적으로 가면, 쏠림 현상이고 뭐고 없습니다.”

 

지성과 창조는 대립이 아니다. 생명은 그 자체가 감동이고 눈물이다.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 즉 과학이 몰랐던 것이 그것이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은, 그가 발견한 중력을 거슬러 거기까지 올라갔기 때문 아닌가. 뉴턴은 떨어지는 과학의 법칙은 발견했지만, 올라가는 생명의 법칙은 발견하지 못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그렇게 짓누르는 중력을 이겨내고 하늘로 향한다. “뉴턴, 너 바보야”라는 농담을 곁들인 이 교수는 이것이 ‘영성’이라고 역설했다.

 

2. 인생을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본질적 질문에 보편적 답변이 있을까요.

 

두 번째 질문 앞에 빠진 것은 ‘무엇을 위해서’라는 말이다. 그 ‘목표’에 따라, 열심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영혼이라도 끌어모아 집을 사기 전에, 한 번쯤 물어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인생이 그 방향으로 ‘쏠림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어령 교수는 ‘영끌’ 해서 집을 사고 나면, 그 다음 목표는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집을 사서 아이를 키우는 등 여러 다른 목표를 가진 사람과, 집을 갖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사는 사람이 같은지 물은 것이다.

 

그는 어쩌면 손쉽게 답을 얻어 해결하고 정리하고 싶어 던지는 질문에, 우리가 그 속에서 잃어버린 것을 찾아 되물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한다.

 

우리가 어떤 목표를 위해 열심히 살다 보면, 허탈함도 느끼고 고통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남들과 똑같은 목표가 아닌 진정한 삶의 목표를 발견했다면, 그 고통에는 의미가 있다. ‘산모의 고통’처럼, 새로운 생명을 만나는 데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고통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찾으셨다.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이시여’ 하고 두 번이나 부르셨다. ‘나를 버리시나이까’는 절망의 언어이지만, 곧바로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시고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절망의 끝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다. 반대로 요즘 ‘희망고문’이라는 말처럼, 가짜 희망의 끝은 절망이다.

 

이윽고 이어령 교수는 답한다.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없다’고. 그 이유는, 생명은 아름다운 것이고, 기적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사는 것을 넘어, 오늘 하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설의 진리, ‘하나님 주신 생명의 귀중함’을 이 교수는 청년들에게 역설하고 싶었을 것이다.

 

3. 개인의 지성적인 발전이 영적 성장과 관련 있을까요? 지성과 영성은 독립된 영역인가요, 아니면 불가분의 영역인가요?

 

회심 후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대표작으로 남긴 이어령 교수는 지성과 영성을 대립 개념으로 보는 것부터가 ‘우리의 원죄’라고 일침을 놓는다. 이 세상에 지성 따로, 영성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잘못이라는 것.

 

우리는 원죄를 겪지 않고, 지성이 저지르는 잘못을 겪지 않고서는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고, 하나님을 영접할 수도 없다. 마치 사탄의 언어와도 같은 의문을 해결하고 벗어빌 때, 영성의 세계가 확 다가온다.

 

평생 지성과 영성 사이에 있는 ‘문지방’에서 회의했던 자신의 경험도 곁들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알량한 지성’을 버리고 완전히 ‘추락’해야 영성의 세계로 갈 수 있지만, 아직까지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

 

첫 번째 질문 답변처럼 지성이 필요악이자 디딤돌이라는 말도 다시 꺼내면서, ‘지성은 버리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성 없이, 즉 회의와 부정의 시간 없이 곧바로 영성의 세계로 갈 수도 없다. 그래서 그가 쓴 또 다른 책 제목이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원 제목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이다.

 

80년 동안 배우고 익힌 지성이 마치 중력처럼 문지방을 넘지 못하도록 끌어당겼지만, 양쪽의 팽팽한 힘에 무중력 상태였던 그를 끌어당긴 것은 암 발병 소식이었다. 갈등과 회의, 지성의 굴레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질병’이라는 최후의 도전이 그를 반대쪽으로 이끌었다. 첫 답변에서 답했듯 “육체는 소비하지만, 지혜는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선물로 주신 생명(Gift), 가져가십시오”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됐다. 숨쉬는 것부터 평생 갈고 닦아온 지성의 세계까지 모두 내 것이 아님을, 생명마저 창조주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임을 아직 창창한 청년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죽는다는 것은, 그 위대한 재산(Great Gift)들은 반납하는 것일 뿐이다. 내 것이 아니었기에, 원 주인이 달라고 하면 그대로 내주어야 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라틴어로까지 자연스럽게 나아간다.

 

그렇게 중요한 영성이지만, 영성만 강조하는 교회라면 경계해야 한다. 우리에겐 몸(body)과 마음(mind), 그리고 영혼(spirit)이 있는데, 몸과 마음은 컨트롤할 수 있지만 영혼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거기서부터 사교(邪敎)가 나오고, 지성인들이 기독교에 회의를 갖게 만든다. <중략>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종교신문1위 크리스천투데이 기사 전문 ->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0239

 

이어령 교수, 청년들 마지막 7가지 인생질문에 답하다

지난 2월 영면한 故 이어령 교수가 청년들의 질문에 답했던 생전 인터뷰가 공개됐다. 9월 27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과학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2022 베리타스포럼 고려대’에서다. 베리타스

www.christiantoday.co.kr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