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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인 교회 지도자 칼럼/김안홍 컬럼

[김안홍 목사 기고] 일본선교의 목적은 무엇인가<2007.04.26>

by 일본 재일 한인교계 연도별 보도 2021.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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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홍 목사 칼럼
2007년12월24일 크리스천투데이 일본지사 창간호

[김안홍 목사 기고] 일본선교의 목적은 무엇인가

 ‘교회를 위한 세상’이 아닌 ‘세상을 위한 교회’될 것 강조

 

교회는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다. 역사상 「보이는 교회」는 과거에 많이 있었고 현재도 많이 있습니다만 「보이지 않은 교회」에 전부 속하여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하 「보이는 교회」를 「교회」로 표현함)


교회는 ‘무엇을 행하느냐’보다 ‘무엇을 향하여(목적)’, ‘어떠한 입장에 서는가(장소)’를 명확히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는 말씀은 이 세상에 있는 개인과 교회, 단체와 국가는 다 완전한 것이 하나도 없고 모두 다 죄인들이 모인 불완전한 집단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긍정적인 완전한「교회」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류역사상에「교회」는 좋은 역할을 많이 해 왔고 앞으로도 할 것을 믿는바 입니다만, 동시에「교회」는 과거에 잘못한 일도 많이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추구하는 긍정적인「교회」는 과거의 부정적인 교회를 오늘 부정함으로 긍정적인 올바른「교회」를 구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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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추구하는 ‘올바른「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교회」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교회」는 교육, 훈련, 전도, 영성 강화, 치유 등 다 필요한 것이지만 ‘교회 성장’이 목적이 되어서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교회」는「하나님과 교회」,「교회와 세상」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과거 역사의 흐름속에서 잘한 것도 많이 있지만 잘못한 것도 많이 있었다고 봅니다. 역사의 흐름속에서「교회」가 잘못한 것을 오늘 우리가 부정함으로 올바른「교회」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교회론」을 말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말할 수 있는 자격도 없습니다만 역사속에서「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간단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세상을 부정하는 교회
신앙에 대한 핍박이 있었을 때 숨어서 믿는 자가 있었고 혹은 수도원을 건설하여 신앙을 지킨 사실이 있었습니다. 수도원적인 교회는 영적 공동체를 너무 강조를 하다 보니 세상을 부정하는 신앙 즉, 육과 세상은 악하고 영혼과 천국은 선하다는 이원론적 사상을 가지게 된다고 봅니다. 현재는 신앙과 삶이 분리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고 봅니다.

성경은 우리들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로마서12장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린도전서6장19절~20절「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히노마루 배」를 타고 있는데 이 배가 어디로 가는가 생각하지 아니하고, 배 안에서 치유 와 위로, 영성과 교회 성장을 강조하면서 은혜를 받았다고 만족한다면 수도원적인「세상을 부정하는 교회」가 되어버리지 않을까요?

(2) 세상에 동화하는 교회
세상에 동화되는 교회는 제2차세계대전때 정부에 협력한 일본교회와 독일교회였고, 현재는 자기 나라의 가치관에 따라가는 교회, 즉 민족주의나 민족공동체에 따르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제사장, 예언자, 왕의 사명 세가지를 다 하셨는데 그리스도를 따르는 오늘의 교회는 제사장(예배) 만 강조하고, 예언자, 왕의 사명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장10절이하-배와 기도를 하지 말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미가 6장6절~8절, 아모스 5장21절~24절, 호세아 6장6절, 이사야 56장9절-벙어리 개, 11절-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실예)ⅰ.신사참배(전쟁중의 일본교회의 기도)
ⅱ. 독일교회가 전쟁에 협력한 것과 유태인 600만 명의 관계.
ⅲ. 일제시대의 일본기독교교단의 성립과 조건(신조, 일본어 사용, 목사재시험, 창시개명, 한국어 사용금지)
ⅳ. 3.1운동은 교회가 남의 나라 일본이니까 하기 쉬웠지만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지 못한 것은 세상에 따르는 교회가 아닌가요?
ⅴ. 미국교회가 과거에 흑인들을 차별하여 교회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문제.

(3) 세상을 변혁하는 교회
가톡릭교 신자인 안중근 의사를 신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합니까? 군대에 가서 사람을 죽이면?

① 주님의 기도-「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기도는 하나님이 현실을 지배하시기를 구하는 ‘하나님 나라 운동’입니다. 그렇다면 현실은 불완전하고 악이 강하며 차별과 억압이 있고 정의가 없는 사회와 지구촌을 ‘하나님 나라(지배) 운동’을 전개하려면 변혁의 사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② 계시록22장 20절-「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③ 사도신경-「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몸을 제자들에게 보인 것이지 영혼을 보이신 것이 아닙니다. 영혼 구원만이 아니라 육체의 문제도 포함한 전인격을 선교를 지향합니다. (살전5장 23절- 혼과 마음과 몸을 완전히 지킴으로)

④ 누가복음17장20절~21절「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개인의 마음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 하나님의 나라(지배)가 있고, 제자들 사이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질문한 바리새인 중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⑤ 전체와 개인의 관계(개인과 히노마루 배(日本丸 船))
전체와 개인의 관계를 수식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아래 수식은 괄호안에는 같은 플러스(+)이지만 괄호앞에 플러스(+)냐 마이너스( –)냐에 따라 답이 다른 것입니다.

a. +(+1+1+1)=+3
b. -(+1+1+1)=-3

아래 수식은 전체가 마이너스(–)인데 개인 개인이 올바르게 플러스(+)로 산다 해도 윤리적으로는 답은 마이너스( –)라고 합니다.

b.-(+1+1+1)=-3

아래 수식은 답이 플러스(+)되는 것입니다.

① 전체가 플러스(+)로 갈 때 찬성 플러스(+) 행의 할 때 : a. +(+1+1+1)=+3
② 전체가 마이너스( –)로 갈 때 반대 마이너스( –) 행의 할 때 : c. -(-1-1-1)=+3

우리는 각각「히노마루 배」안에서 자기가 속한 협의회, 선교단체, 친목단체, 교단, 교파라는 작은 배를 타고 있으니 이 배들이 가는 방향이 플러스(+)냐 마이너스( –)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므로 심중하게 배들의 전체 흐름을 잘 보아야 합니다.

C.결론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의 나라(지배)의 복음입니다. 크리스천은 그리스도에 의해 이 세상에서 선택되어져, 하나님의 나라(지배)를 증거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뿌려진 하나님의 나라(지배)의 씨앗입니다. 교회는 이전부터 이 세상에 있었으며 이 세상을 초월하여 생존하는 종말론적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선교는 개교회 성장을 위하여 힘껏 노력하는 동시에 일본사회속에서 차별과 억압에 의해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인간, 즉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모습이 상실된 인간과 파괴된 자연을 회복시키는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교의 목적은 교회를 위한 세상(교회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성경 공부,전도, 치유)을 강조함이 아니고, 세상을 위한 교회(세상의 빛과 소금,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로서 세상을 변혁하는 선교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히노마루 배(일본 배)안에서 작은 배들이 시기, 질투, 분쟁 등을 하지 말고 히노마루 배가 올바른 길을 가도록 기도와 선교하며 적극적으로 협력과 협조하여 이 배가 우경화로 흘러가지 안도록 노력합시다. 우리들이 서로서로가「화평케 하는 자(마태복음5장9절)」가 됩시다.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 원하옵기는 변화가 가능한 것은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원하옵기는 변화해서는 안되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냉정함을 주시고 그리고 변화가 가능한 것과 변화해서는 안되는 것을 식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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